4장 이재문과 여정남 ⑦ 와룡산 염소농장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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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영민 댓글 0건 조회 2,903회 작성일 24-09-17 00:30본문
1969년 벽두부터 공화당에서 개헌 문제를 들고 나왔다. 조국 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추진할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누가 봐도 박정희가 계속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삼선 금지 조항을 폐지하자는 게 본뜻이었다. 야당과 재야에서는 ‘삼선개헌 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개헌 반대 운동에 나섰다.경북대에서도 6월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위가 시작됐다.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거부하며 6일 연속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결국 휴교령이 떨어졌다. 총학생회장과 정사회 회장은 제적됐고, 시위 주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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