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이재문과 여정남 ④ 6.3 투쟁과 1차 인혁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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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영민 댓글 0건 조회 3,873회 작성일 24-08-27 00:31본문
1964년 봄, 대학가는 다시 시위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군복을 벗은 박정희는 1963년 10월의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 후보를 15만여 표 차로 간신히 꺾고 당선됐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최소 득표 차이였다.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군정 시절부터 추진해 온 한일수교를 서둘러 타결하려고 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에서 가져오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댔다. 이에 야당과 재야 세력은 ‘대일 굴욕외교 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를 결성해 정권에 맞섰다. 학생들도 굴욕적인 한일회담 반대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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